스포츠 에이전트의 등장
스포츠 에이전트의 등장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드 그랜지라는 당대 최고의 풋볼 선수가 1925년 미국 풋볼 팀 중 하나인 시카고 베어스와 계약할 때 그의 에이전트였던 찰스 파일이 그를 대리해서 체결한 연봉 계약이 스포츠 에이전트의 첫 번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연봉 대리 계약’이라는 소극적인 의미의 에이전트 역할에서 보다 포괄적인 역할을 하는 현대적 의미의 스포츠 에이전트가 등장하기까지는 다시 40년이 걸렸다.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포수로 활약하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바꿔 맹활약했던 흑인 투수 얼 윌슨은 야구 선수로서 인생의 최종 목표와 흑인으로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포수라는 포지션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었지만 강한 어깨를 인정받아 투수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야구 선수로서는 성공했지만 다른 선수에 비해 보이지 않는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는 1962년에 일어난 작은 사고로 지인에게 소개받은 젊은 변호사 로버트 우프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상담했다. 우프는 윌슨 사건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우연찮게도 1967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연봉 계약까지 대리하게 되었다. “많은 야구 전문가가 이때부터 본격적인 의미의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우프는 선수 연봉 계약 외에 각종 상담과 조언(sports advisor) 서비스를 제공해 흔히 말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에이전트’ 역할을 했다.
한편,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생겨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마케팅 컨설팅 회사 IMG의 설립자인 마크 매코맥은 1960년대 후반에 당대 최고의 골프 스타인 아놀드 파머를 고객으로 맞이했다. 파머의 PGA 대회 스케줄과 텔레비전 출연, 후원 광고 섭외 등을 IMG에서 대신하면서 몇 년 만에 그의 1년 수입이 5만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수직상승했다. 일부 스포츠 산업 전문가는 매코맥의 등장 본격적인 스포츠 에이전트 시대의 개막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스포츠 스타의 금전적 가치를 최대화시키기 위해 용품 후원 계약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되고 매력적인 개념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골프, 테니스와 같이 우승 상금을 목표로 하는 스포츠 경기는 선수의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수입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매코맥은 선수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후원 계약이라는 새로운 수입원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광고 후원’ 혹은 ‘용품 후원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스포츠 에이전트와 매코맥의 차이점이었으며, 그가 찬사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에이전트는 운동선수 에이전트(athlete agent), 스포츠 변호사(sports lawyer), 혹은 스포츠 어드바이저(sports advisor)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직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트 관련 법령(The Uniform Athlete Agents Act)에는 “운동선수(혹은 운동을 전공하는 학생)를 모집해 이들과 에이전시 계약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약하는 사람 중에 약 50퍼센트 이상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로스쿨을 졸업하는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에이전트의 비율 역시 매년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경쟁 에이전트보다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변호사 에이전트(Lawyer-agent)’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은퇴한 프로 스포츠 선수, 코치, 각종 보조 업무를 도와주던 매니저와 함께 팀을 꾸려 종합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의 성장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대중화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계기를 크게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미국대학스포츠연맹NCAA에 등록된 스포츠 선수가 이미 15년 전에 10만 명을 돌파해 스포츠 선수라는 상품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공급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모두 프로 스포츠 리그로 진출하지는 못하지만 프로 선수가 될 잠재력을 갖고 미국 대학 스포츠 리그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선수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진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선수의 안정적인 시장 공급이야말로 에이전트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이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이미 실력이 우수한 선수는 국적과 종목에 상관없이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기 위해 미국 대학연맹에 등록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미국대학스포츠리그는 프로 스포츠 시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우수한 선수들은 대학스포츠리그(특히 풋볼과 농구)를 단지 프로로 데뷔하기 전에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사전 무대 정도로 생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지금까지 북미 4대 메이저 스포츠 리그라고 불리는 NFL, MLB, NBA, NHL은 오랫동안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에 성장 동력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틈새시장으로만 여겨졌던 MLS (프로 축구 리그), NASCAR (자동차 경주), PGA, LPGA, X-Games 등이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하면서 에이전트의 수요는 더욱 증가했으며 에이전트 시장은 다양화되었다.
셋째, 천문학적인 중계권료의 인상, 후원사 수입의 대폭적인 상승,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포츠 용품 의류 개발, 스포츠 경기장 건설(특히 고급좌석) 붐을 통한 입장료 수입 증대 등을 등에 업고 발전한 여러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선수 연봉도 자연스럽게 인상되었다. 일부 선수의 몸값이 많게는 수천만 달러에 이르게 되자 그들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인식한 사람들이 에이전트 산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프로 리그 최저 임금의 상승, 신인선수 드래프트 제도, FA 활성화로 인해 천문학적 선수 연봉이 실현되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우수한 에이전트의 대대적인 시장 진입이 시작된 것이다.
넷째, 1956년 MLB 선수협회의 창설을 계기로 MLB 선수의 계약 협상에 에이전트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1975년부터 자유 계약(일명 FA 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에이전트의 입지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프로스포츠리그선수협회(NLFPA, MLBPA, NBPA, NHLPA 등)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전체 구단주로 구성된 리그 이사회와 노동 교섭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선수의 권익 또한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메이저 리그는,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그동안 선수들이 그동안 받지 못했던 다양한 보너스(사이닝, 리포팅스, 로스터 보너스, 연금 보험 등)와 같은 혜택에 대해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에이전트를 고용한 프로 선수들의 만족도와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동시에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이 스스로 미래 자산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재무 계획에 대한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변호사가 아닌 재무 · 회계 · 투자 자격증을 가진 직업군이 프로 스포츠 산업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선수 연봉에 과도하게 부과된 세금 문제라든가 은퇴 후 재정 계획에 대한 조언이 필요한 선수들은 변호사 자격증 뿐만 아니라 회계사나 세무사 자격증을 동시에 지닌 에이전트를 선호하게 됨으로써 에이전트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게 되었다.
에이전트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스포츠 에이전트는 고객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까? 에이전트끼리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나름대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에이전트는 다음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첫째, 에이전트의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역할로 구단과의 연봉 협상(금액과 계약 기간) 계약을 대리한다. 단순히 협상만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시장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가기 전에 고객 선수의 과거 성적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그 선수의 시장가치를 리그 전체 수요를 고려해 해당 구단의 구체적인 요구와 팀 연봉 상한액과 같은 니즈에 맞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해 해당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이전트들은 (물론 리그마다 차이가 있지만) 구단에서 선수 연봉으로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되어 있는 경우, 다시 말해서 리그에서 샐러리캡(팀 연봉 상한액)이라는 방패막을 펴놓을 경우, 에이전트는 구단이 지불할 수 있는 총 연봉 상한액이 얼마인지 미리 파악해 선수들이 최대의 시장 가치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전략을 준비한다.
둘째, 실력이 우수한 정상급 선수는 구단에 대한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연봉 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활약했던 칼 립킨 선수는 은퇴 후에 오리올스 구단에서 연 2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4년간 일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MLB에서 최근 3,000안타를 기록한 일본 출신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개인트레이너, 통역, 1년에 2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1등석 비행기 왕복 티켓, 그리고 3~10월까지 교통비와 집세로 약 2만 5,0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미네소타 트윈스로 진출한 박병호 선수 역시 통역비로 연간 5만 달러, 이사 비용으로 5,000달러, 한국행 비행기 1등석 티켓(연 2회)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활약했던 거스 윌리엄스 선수는 연간 70만 달러의 연봉 외에도 17만2,000달러짜리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면서 한 시즌 73개의 홈런 신기록을 갖고 있는 베리 본즈 선수 역시 구단과의 계약에 매우 독특한 조항을 넣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인 바비를 구단 코치로 고용해줄 것과 이후 재계약할 때는 그의 아들이 배트 보이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력이 무척 뛰어나 구단에 선수의 영향력이 막강할 경우, 위에서 말한 것보다 더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활약했던 레지 잭슨 선수는 연간 팬 180만 명 초과분에 대해 1인당 30센트의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불세출의 아르헨티나 천재 축구 선수인 디에고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활약할 당시 연봉 외에 구단 유니폼 등 상품 매출액의 25퍼센트와 매년 나폴리에서 그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다녀올 왕복 티켓(각 2장) 총 24장을 요구했다. 또 하나 선수들이 요구하는 재미있는 계약은 ‘엄마 조항(Mama clause, 학업을 중단하고 프로 선수가 된 자녀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혜택이라는 이유로 ‘엄마 조항’이라고 함)’이라고 불리는 고등교육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에 진학하기 전 프로구단에 입단한 선수가, 비시즌에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구단에서 지불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러한 혜택에 대해 에이전트는 수수료를 받을 길이 없어서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부당한 스포츠 관련 법규나 규제로부터 선수를 보호한다.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일 외에도 개인 신상에서 민법이나 형법상 문제가 되는 행위, 가령 금지 약물 사용, 음주 운전, 폭력 등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에이전트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총기 소유부터 각종 폭력에 휘말려 15년형을 선고 받았다가 4개월 만에 경기장으로 복귀한 NBA의 앨런 아이버슨이나, 불법 투견 도박을 해 연방법을 위반하고 2년형을 받은 NFL 쿼터백 마이클 빅 선수의 에이전트는 구단과의 연봉 계약 외에도 변호사로서 또 다른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다른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것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에이전트는 프로 스포츠 선수 대부분이 거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오래가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은퇴 전에 선수의 건전한 재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조언을 하기도 한다. 미국 시애틀에서 1989년 이후 지난 27년간 NFL 스포츠 에이전트로 꾸준히 명성을 날리고 있는 캐머런 포스터는, “프로 리그 선수 중 선수로서의 삶이 끝났을 때 자기가 받았던 총 연봉의 25퍼센트만 은행 계좌에 남아 있어도 성공한 경우”라면서 실제로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2009년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ustrated)』에 의하면 NFL 선수의 78퍼센트가 은퇴 후 2년 안에 파산신고를 하고, NBA 선수의 60퍼센트는 은퇴 후 5년 안에 파산신고를 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포천Fortune』에서는 2년 후에 파산신고를 하는 NFL 은퇴 선수는 1.9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12년이 넘어가면 다시 15.7퍼센트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NBA 출신 선수 중 대부분은 수백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지만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북한을 방문해 큰 화제가 된 빈 베이커 선수는, NBA 선수 시절 연봉으로만 1억 달러를 넘게 벌었고, 2000년 미국 드림팀 일원으로 미국에 금메달까지 안겨준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케니 앤더슨 선수 역시 NBA 선수 시절에 연봉으로만 6,500만 달러를 벌었지만, 파산을 면치 못해 결국 금전적 이익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역할 외에도 선수의 은퇴를 대비해 제2의 인생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부상을 당했을 때 의료 전문가를 소개하거나 일부 약물 혹은 알코올 중독으로 부작용을 겪고 있는 선수를 위해 전문 치료 기관을 연결해주어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