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필요성1

스포츠 에이전트란

우리에게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용어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스포츠 영화로 선풍을 일으킨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졌다. 2014년에 개봉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드래프트 데이>를 통해 스포츠에이전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해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러 한국인 스포츠 스타 역시 해외 무대로 진출하도록 도와준 스포츠 에이전트가 없었다면 해외진출 기회를 쉽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 에이전트는 누구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스포츠 에이전트란 ‘선수 등 스포츠와 관련된 개인, 경기 단체, 지방자치 단체, 기업 등의 고객(이하 ‘고객’이라 한다)에게 스포츠 에이전트 업무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아 고객의 이익을 위해 그 업무를 행하고 보수를 지급받는 자’라고 정의한다. 보통 그들을 고용한 선수와 고객을 대신해 구단과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일반적 교섭권 또는 대리권을 위임받은 자 모두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 에이전트는 구단 입단과 연봉 계약, 스폰서 계약 등 선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대리인 역할을 비롯해 선수의 이미지와 수입관리, 법률과 세무 자문, 스케줄 관리 등을 담당한다.

스포츠 선수의 신체는 그 자체가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도로 훈련된 기량인 기술을 더해 신체적 활동 가치를 발전시킴으로써 선수의 가치를 여러 각도에서 높인다. 선수가 기본적으로 보유한 능력과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다양한 협상 기법을 통해 선수의 경제적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스포츠 에이전트의 역할이다.  하지만 일부 종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선수는 에이전트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직장인 김현수와 오승환의 사례를 들어보자.

김현수는 A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본사를 둔 D회사에 입사했다. 요즘 같이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시절에 용케도 취업에 성공한 김현수는 가족과 친지의 축복과 환영 속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새 인생을 설계했다. 김현수는 어릴 적부터 일명 ‘엄친아’로 불리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정말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그 결과, 대학 졸업식에서 우등 졸업상을 받는 등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고향이 지방이었던 김현수는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그는 공부는 잘했지만 사회 경험이 다소 부족했다. 특히 대학 재학 동안 학교 기숙사 외에는 거주 경험이 전혀 없던 그는 자취방을 구하는 일이 취업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얻은 끝에 회사 근처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동네에 예산에 딱 맞는 자취방을 찾지 못했다. 결국 부동산마다 매물이 나오면 꼭 좀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섰다. 부동산을 나서면서 그는 ‘집을 구하는 일이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구나. 만약 부동산 중개업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승환은 아주 잘 나가는 S 증권회사의 펀드 매니저다. 대학교 4학년 때 S증권회사가 개최한 대학생 모의 투자 대회에서 초기 투자금의 3,00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려 이 회사에 특채로 들어올 정도로 특출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매주 100시간이 넘게 일한 나머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모임에 참석한 친구 중에 10년 동안 여행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바쁜 스케줄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오승환을 대신해 가족여행 계획을 세워주기로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오승환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가족 역시 길지는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뻐했다.

직장인 김현수와 오승환의 사례를 스포츠 에이전트와 연계해서 생각해보자. 위 사례에 나온 김현수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 선수라고 해보자. 김현수 선수는 프로구단에 입단할 때까지 야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쳤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로 진출해 막상 구단과 계약할 때 그는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쳤을 가능성이 높다. 표준 계약서부터 MLB에서 정한 각종 규제까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경기 외적인 것에 대해 불안감을 떨쳐버리게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소속된 김현수 선수는  에이전트의 전적인 도움을 받아 야구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던 두산 베어스 김현수 선수는 규정 제42로 인해 에이전트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펀드 매니저인 오승환이 국내 삼성 라이온즈 야구 선수였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펀드 매니저로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어떠한 장애물도 없었다. 하지만 프로 야구 선수로서 훈련에만 집중해야 할 오승환 선수에게 계약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일명 ‘스포츠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6년 2월 17일 정부는 ‘스포츠 산업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스포츠 에이전트를 키워 스포츠 산업을 더욱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한국의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에이전트 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선진 시장을 살펴보고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사전에 인지해 잠재적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문제점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불편한 에이전트 제도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면 다양한 혜택을 얻을 수 있는데도 리그와 구단 관계자는 대체로 이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이유는 첫째, 지난 40년간 큰 무리 없이 리그와 구단을 운영해온 탓에 불평등한 구단선수의 관계로 그동안 간과되었던 선수의 기본적인 권익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에이전트 제도로 인해 구단의 연봉 지출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이 제도의 도입으로 선수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구단이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총 인건비는 우려했던 대로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구단주로 구성된 리그운영위원회(Board of Governors)는 선수협의회와의 단체협상합의(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를 통해 팀 연봉 총액 상한제인 ‘샐러리캡’이라는 보호 장치를 만들어 과도한 연봉 지급으로 인해 구단이 쉽게 파산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즉, 리그와 선수협의회가 협의를 통해 전체 구단 수입의 일정 부분(총 구단 수입의 50~60퍼센트 정도) 이상을 선수 연봉으로 지급할 수 없도록 해서 구단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했다. 이러한 제도는 선수와 구단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절충안으로, 전체 구단 수입의 파이가 증가하는 경우에 선수 연봉도 더불어 증가할 수 있는 유용한 시스템이다.

셋째, 리그의 총 운영 수입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모기업에서 재정적으로 지원받기 때문에 연봉 상승을 야기하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2009년 WBC 준우승을,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프로 야구가 단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아직까지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프로 야구 A구단 관계자는 “구단을 통한 모기업의 광고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한다면 모기업이 지원하는 금액보다 훨씬 클 것이다”라고 전해 시기상조라는 명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지난 40년 동안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장악해왔던 리그와 구단이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면 선수에 대한 통제권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선수의 일탈 행위나 부적절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징계권을 가진 리그의 경우, 에이전트와 의사소통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마찰 등을 단순히 구단 경영의 비효율성으로 폄하하며 탐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다섯째, 일부 선수 역시 에이전트 제도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부익부 빈익빈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실력이 뛰어나 구단과의 협상력이 좋은 일부 정상급 선수의 연봉은 급상승하는 데 반해 그 외의 선수들은 이 제도로 혜택을 누릴 것이 별로 없다. 에이전트들도 정상급 선수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많은 출혈 경쟁을 벌이지만, 그 외의 선수는 에이전트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선수의 실력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고과를 통해 연봉 협상이 이루어질 텐데, 이럴 경우 1군에서 활약한 경험이 없는 선수는 여전히 고과 평가가 어려워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어도 별다른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계약 조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고, 수용 가능한 연봉을 산정하기 위해 구단은 운영팀, 육성팀 등에 연봉 산정 담당자를 두고 있으며, 연봉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두고 있다. 구단은 데이터로 산출한 고과를 근거로 책정한 연봉을 선수들에게 제시한다. A구단의 연봉 고과 산출 기준을 보면 구단 고과(50퍼센트), 정규 시즌 성적(20퍼센트), 타석 수 또는 투구이닝(10퍼센트), 1군 등록 일수(10퍼센트), 코치 고과(10퍼센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반면, 선수는 구단에 경기력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길이 없다는 점, 보류 제도로 입단 이후 수년간 구단에 종속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점 등 협상력이 구단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대체로 불리한 편이다.

선수가 연봉 산정에 불합리함을 느꼈을 때 4대 프로 스포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로는 연봉 조정 신청 제도가 있다.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는 조정위원회, 프로 농구는 재정위원회, 프로 배구는 상벌위원회에서 본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연봉 조정 신청의 시행 현황과 결과를 보면, 구단과 선수의 협상력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우선 1982년부터 시작된 프로야구에서는 총 20회의 연봉 조정 신청이 있었는데, 한 차례 (2002년 LG 소속 유지현)’를 제외하고 구단이 모두 승리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프로 농구의 경우에도 프로 야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총 31회의 보수 조정 신청이 있었고, 1998년 당시 나산 소속이던 김현국이 유일하게 구단을 이길 수 있었다.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OK 저축은행 곽명우의 연봉 조정 신청건이 2016년 7월 21일에 진행되었으며,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프로 축구에서는 연봉 조정 신청이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 현황을 산정한 자료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측의 중간에서 중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협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에서 구단과 선수 간 협상 시 구단이 막대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률, 통계, 마케팅 등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에이전트가 나서서 구단과 선수가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서 연봉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에이전트 제도의 긍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참조: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필요성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