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필요성2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필요성1에 이어 이번 글에서도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불평등한 계약 조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고, 수용 가능한 연봉을 산정하기 위해 구단은 운영팀, 육성팀 등에 연봉 산정 담당자를 두고 있으며, 연봉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두고 있다. 구단은 데이터로 산출한 고과를 근거로 책정한 연봉을 선수들에게 제시한다. A구단의 연봉 고과 산출 기준을 보면 구단 고과(50퍼센트), 정규 시즌 성적(20퍼센트), 타석 수 또는 투구이닝(10퍼센트), 1군 등록 일수(10퍼센트), 코치 고과(10퍼센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반면, 선수는 구단에 경기력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길이 없다는 점, 보류 제도로 입단 이후 수년간 구단에 종속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점 등 협상력이 구단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대체로 불리한 편이다.

선수가 연봉 산정에 불합리함을 느꼈을 때 4대 프로 스포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로는 연봉 조정 신청 제도가 있다.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는 조정위원회, 프로 농구는 재정위원회, 프로 배구는 상벌위원회에서 본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연봉 조정 신청의 시행 현황과 결과를 보면, 구단과 선수의 협상력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우선 1982년부터 시작된 프로야구에서는 총 20회의 연봉 조정 신청이 있었는데, 한 차례 (2002년 LG 소속 유지현)’를 제외하고 구단이 모두 승리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프로 농구의 경우에도 프로 야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총 31회의 보수 조정 신청이 있었고, 1998년 당시 나산 소속이던 김현국이 유일하게 구단을 이길 수 있었다.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OK 저축은행 곽명우의 연봉 조정 신청건이 2016년 7월 21일에 진행되었으며,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프로 축구에서는 연봉 조정 신청이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 현황을 산정한 자료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측의 중간에서 중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협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에서 구단과 선수 간 협상 시 구단이 막대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률, 통계, 마케팅 등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에이전트가 나서서 구단과 선수가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서 연봉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에이전트 제도의 긍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불공평한 에이전트 제도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는 현재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중 유일하게 프로축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프로 축구의 경우 FIFA 규정에 나와있는 에이전트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여 공식 에이전트를 인정했다가  2015년 4월 등록 중개인 제도로 선수 에이전트 제도를 변경했다. 최근에는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활동할 수 있도록 에이전트 활동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었다. 이에 반해 프로 야구, 프로 배구, 프로농구에서는 에이전트를 인정하지 않거나 제한하고 있다. 프로 배구에서는 규약 제70조 제2항에 따라 대면 계약을 원칙으로 하며, 국내에서 발생하는 선수 이적과 계약에 대한 에이전트의 역할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해외 용병 선수의 국내 이적과 관련해서는 에이전트 선임을 인정하여 에이전트 제도의 적용을 둘러싸고 내국인 선수와 해외 선수 간의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김연경 선수는 터키 프로 배구팀으로의 이적 과정에서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 취득 요건과 관련한 국내 규정의 해석과 계약 관계를 두고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국제배구연맹이 나서서 갈등을 봉합했지만 이 과정에서 선수의 권익과 신분 보호를 위해 국내에서도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 야구의 에이전트 시장 역시 앞서 살펴본 프로 배구와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프로 야구에서는 전통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때 선수와 구단 관계자가 직접 만나서 하도록 하는 대면 계약 제도가 원칙으로,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001년에 시정명령(공정거래위원회 의결 제2001-30호)을 내린 결과, 한국야구위원회 규약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개정된 규약에서도 변호사만 선수를 대리할 수 있고, 2인 이상의 선수계약에는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해 에이전트 제도를 제한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칙을 통해 대리인 제도 시행을 유보해 사실상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프로 야구 선수중 해외 리그로 진출하거나 해외 용병 선수의 국내 프로 야구 입단 계약에서는 에이전트를 인정하는 등, 에이전트를 고용할 권리에 차별을 두어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 고용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내 프로 농구에서도 그동안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규약을 개정해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도 명목상 허용하고 있다. KBL 규약 제76조에 따르면 구단의 선수 계약에 관해서는 선수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에이전트 이외의 어떤 사람도 대리인 역할을 담당할 수 없고, KBL이 정한 절차에 따라 등록한 사람에 한해서만 에이전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KBL은 국내 선수의 에이전트가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등록 제도 자체를 마련하지 않고 있어 국내 선수는 에이전트를 고용할 수 없으며 고용하더라도 KBL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 또 시장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내국인 선수에 대한 에이전트 제도 조항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외국인 용병의 에이전트에 대해서는 자격과 활동에 대해 별도의 제약 없이 인정하고 있다.

프로 농구에서 에이전트와 관련된 대표적인 분쟁으로, 2005년 2월 KBL 국내 선수 드래프트에서 추첨을 통해 KTF (현재 부산 KT 소닉붐)에 1순위로 지명된 방성윤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방성윤은 IMG 코리아에 계약 협상을 위임했고, IMG 코리아는 KTF와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KTF는 KBL이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 고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내세워 방성윤과 직접 연봉 협상을 하고자 했다. KBL 규정상 2005년 6월 말까지 KTF와 계약 체결을 하지 못할 경우, 5년간 국내 프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에이전트를 통한 협상 문제를 두고 양측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결국 방성윤과 KTF는 몇 차례 직접 협상을 한 후, 2005년 6월 29일 연봉 9,000만 원에 5년간 계약을 하면서 향후 2년 동안 미국 프로 농구 진출 기회를 보장받았다. 당시 구단이 에이전트와의 입단 계약 협상을 거부하면서 선수로서는 계약이 완전히 성사될 때까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여자 프로 농구WKBL는 규약을 통해 변호사, 법정 대리인에 한해 에이전트로 인정하는 반면,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는 매 시즌 에이전트 등록제를 운영해 국제농구연맹FIBA 또는 WNBA 에이전트 자격을 소유한 자 등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자에 한해 에이전트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에게만 너그러운 에이전트 제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는 에이전트 제도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해외 리그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국내 리그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고용한 에이전트가 있기 때문에 에이전트 고용에 대해 별 다른 조치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외국인 선수와 함께 활동하는 국내 선수들도 외국인 선수의 에이전트 고용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한 프로 야구 선수는 “외국인 선수가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온 만큼 연봉 협상 등에서 의사소통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외국에서는 이미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 야구 선수 역시 이와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타 리그에서는 에이전트 제도가 이미 보편화되어 있어 타리그에서 오는 외국인 선수가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것은 크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국내 야구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불평등이라기보다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 늦출 수 없는 에이전트 제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비록 크고 작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잘 도입되어 다양한 분야의 선수가 권익을 보호받는 동시에 선수들의 시장 가치 또한 상승했다. 이들의 시장 가치(연봉)가 상승하자 구단의 비용도 즉각적으로 증가했다. 일부 정상급 선수는 구단의 재무 상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장점이 있고, 에이전트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로 반대하는 것일까? 프로 야구가 탄생한 지 약 30년이 지났다.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는 KBO 규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멀고도 먼 제도다.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한국 스포츠 산업에 정착한다면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까?

첫째, 지금까지 프로 스포츠 선수의 연봉 협상 과정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구단과 선수의 불평등한 협상 지위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던 선수들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 몇 명을 빼놓고)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선수는 연봉 협상할 때 계약서에 있는 중요 사항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과 연봉 금액, 계약 기간 정도만 재확인할 뿐 계약과 관련한 어떠한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물었다. 또한, 감독이나 코치의 계약서와는 달리 구단과 선수 간의 계약서 쌍방 보관 의무를 명기하지 않은 탓에 적지 않은 KBO 소속 선수가 계약서를 (물론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 갖고 있지 않다.” 이는 계약을 맺은 쌍방이 계약서를 각각 보관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원칙에도 위배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수는 연봉 테이블 상대편에 앉아 있는 구단 대표이사 단장과의 연봉 계약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진정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하는 내부 분위기 역시 계약 당사자 간의 협상 지위를 불공평하게 만들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에이전트가 생기면 선수는 협상력이 높아지고 구단은 에이전트와 협상을 함으로써 선수와의 직접적인 갈등과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봉 협상 과정에서 선수는 구단 관계자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에이전트와 동행함으로써 자신의 연봉 협상력을 상대편과 대등하게 높일 수 있다.이는 결국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지름길이 된다.

둘째, 선수가 금지 약물을 복용하는 등 곤란한 상황에 처해 구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에이전트가 나서서 선수를 도와줄 수 있다. 선수협의회는 리그와의 공식 노동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선수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 선수를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에이전트가 선수들이 필요 이상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받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올림픽에서 23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총 28개의 메달을 따 미국의 영웅이 된 마이클 펠프스 선수는 금지 약물 복용, 대마초 흡연, 음주 운전 등으로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올랐지만 에이전트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수영 선수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연봉 외에 딱히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는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광고 계약이라든지 스폰서십 계약 등의 기회가 생겨 잠재적으로 스포츠 산업 시장에 체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웃도어와 스포츠 관련 상품 시장 광고를 잠식한 연예인들과 경쟁 구도를 만들어 예비 스포츠 스타의 활약이 좀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여타 직업군에 비해 생명이 그리 길지 않은 운동선수에게 제2, 제3의 커리어를 개발해 은퇴 후의 삶을 좀더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가이드해줄 수 있다. 최근에 안정환, 서장훈, 박찬호, 우지원, 현주엽 등과 같이 과거에 화려하게 활약했던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한다. 은퇴 후 소식을 궁금해하던 많은 팬은 그들의 텔레비전 출연이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열렬히 응원했던 팬들은 한국 스포츠계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스포츠가 아닌 연예계로 방향을 바꿔 활동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제2, 제3의 인생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일이 다반사인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의 은퇴 후의 삶을 보다 값지게 만들 조언자가 절실해 보인다. 선수로서 현역 기간뿐 아니라 그 이후의 활동까지 설계해줄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의 에이전트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구단과 관계가 불편한 선수는 에이전트를 통해 긴장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독점 구조로 형성된 하나의 시장밖에 기회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KBO에 등록된 구단에서 활동하는 길밖에 없는데, 시장이 하나기 때문에 이들 구단의 선수에 대한 장악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구단과 선수 간의 보이지 않는 수직 관계, 혹은 상하 관계는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상하 관계에서 기인한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의로운 누군가’가 아직까지 음지에 묻혀 있다. 물론 모든 스포츠 에이전트가 정의롭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유능하고 자격이 검증된 에이전트는 선수(고객)가 구단의 강력한 힘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외 국적을 지닌 외국인 선수만 고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반쪽짜리 에이전트 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적에 따른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점점 많은 해외 선수가 국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리그는 해외 리그와 달리 외국인 선수에게만 에이전트 고용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중적인 규정을 하루빨리 손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프로 스포츠의 품격을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참조: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