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스포츠 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제도적, 절차상 성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프로 스포츠 시장의 외형적 성장과 발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프로 스포츠 시장의 외형적 성장과 발전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에 불편한 입장을 고수하던 일부 프로구단이 제시한 근거와 명분은 바로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극히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는 모기업에서 자립적인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행여나 구단에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논의를 꺼려왔다.
스포츠 산업의 외형적인 성장과 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승부 조작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에 대응하는 제도적, 절차상의 노련미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미흡했다. 2011년 프로 축구에 이어 2012년에는 프로 야구와 프로 배구 선수들이, 2015년에는 프로 농구 선수와 감독이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스포츠 산업에서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프로 야구사상 최초로 관중이 800만 명을 돌파한 2016년 또다시 불거진 프로 야구 선수의 승부 조작 사건은 너무도 실망스럽다.
프로 스포츠 시장은 리그에 따라 발전 속도는 다르지만 프로 야구를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프로 야구는 국가 대표팀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이듬해인 2009년 WBC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팬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2011년부터 프로 야구 총 관중 수는 600만 명을 넘어섰고, 2016년에는 프로 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누적 관중 800만 명 돌파’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프로 야구의 타이틀 스폰서 가격은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2015년)과 같이 구단을 보유하지 않은 업체가 타이틀 스폰서로 선정된 것은 2009년 이후의 일이다. 이 시점부터 타이틀 스폰서 가격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롯데카드), 2012~2014년(한국야쿠르트)가 타이틀 스폰서로 선정된 이후 스폰서 금액은 약 65억 원까지 상승했다. 프로 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광고 효과 또한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야쿠르트는 65억 원 수준의 스폰서 비용을 지출했으며, 광고 효과는 1,160억 원을 얻은 것으로 판단되는 등 타이틀 스폰서 역시 단순히 비용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부터 3년간 연간 67억 원 수준의 KBO 리그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한 타이어뱅크는 연매출이 3,000억 원으로, 프로 야구 타이틀 스폰서 기업 중 최초의 중견기업이다. 타이틀 스폰서 기업의 규모와 종류가 구단의 모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만큼 더 많은 기업이스폰서십에 관심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스폰서십 계약은 잠재력도 크기 때문에 앞으로 지금보다 많은 기업이 다양한 방식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할 것이다.
프로 야구가 다양한 기업의 눈길을 끌고 있다면, 프로 축구와 프로 배구는 장기적인 타이틀 스폰서십을 구축해 안정감을 주는 형태이다. 프로 축구는 현대오일뱅크가 2011년부터 6년 연속 K리그 타이틀 스폰서 자리를 지키며 한국 축구 발전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상위 리그인 K리그 클래식뿐만 아니라, 2부 리그 격인 K리그 챌린지, 4년 만에 부활한 R리그(2군 리그)까지 타이틀 스폰서로 후원하고 있어 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국내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리그 클래식을 후원하지는 않지만, K리그 올스타전, FA컵, 국가 대표 친선 경기 등 1998년부터 대한축구협회와 관련된 각종 공식 스폰서십 관계를 다져온 하나은행은 2015~2018년 4년간 후원 계약을 연장하면서 ‘축구 대표팀 후원 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정도로 축구 후원 기업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프로 배구, NH농협이 2007~2008 시즌부터 9시즌 연속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며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 사상 최장 기간의 스폰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프로 농구는 1997~1998 시즌 타이틀 스폰서였던 휠라코리아와 2011~2012 시즌부터 3시즌 동안 타이틀 스폰서였던 KB국민카드를 제외하고 현대전자(前 대전 현대 걸리버스), 삼성전자(서울 삼성 썬더스), 현대모비스(울산 모비스 피버스), SK텔레콤(서울 SK 나이츠), 동부화재(원주 동부 프로미), 그리고 현재 타이틀 스폰서인 KCC(전주 KCC 이지스) 등 각 구단의 모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단의 모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로 활약함으로써 리그 운영에 안정감을 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구단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스폰서십 참여 부족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프로 스포츠 구단의 수익 구조 다변화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가 정부의 주도로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특이하다. 유럽 축구 리그나 북미의 프로 스포츠 리그는 억만장자 개인이나 몇몇 개인 투자자가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일부 구단은 시민 구단의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프로구단은 대기업에서 시작되었고, ‘기업 홍보’ 명분으로 운영되었다. 모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지니게 되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기업 홍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단이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더러 구단 운영에서 생긴 적자를 ‘기업의 홍보비용’으로 보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프로 야구 구단의 운영 형태에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가 사용하는 한국 최초의 돔구장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 파크와 기아 챔피언스 필드 등 새로운 구장이 속속 건설되면서 일명 ‘허니문 효과’로 수입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허니문 효과’란 신규 경기장이 완공되면 이를 구경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또한 SK 와이번스는 SK행복드림경기장의 좌석을 다양한 테마 형태로 개조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스폰서십 상품을 개발했다.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사용하는 잠실 경기장은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 프로모션을 통해 수입 증대를 꾀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국내 구단 중 처음으로 2015년 시즌부터 ‘인증authentication’ 상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선수들이 직접 사용한 야구 용품 일부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프로 야구 시청률이 오르면서 중계권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을 통한 주말 경기 중계와 네이버 같은 온라인 중계는 휴대폰을 통한 TV 시청에 익숙해진 많은 팬에게 적잖은 시청 편의를 제공했다.
프로스포츠 구단 중 감사보고서를 통해 광고 수익을 명시한 프로야구단 4곳의 수익 내역을 보면 프로구단의 수익 다변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꾸준한 광고 수입 증가는 구단의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프로 야구단 4곳의 2015년 평균 광고 수입은 약 220억 원으로 나타났다. 광고 수입이 공개된 구단 중 가장 높은 수입을 기록한 삼성 라이온즈를 살펴보면 총 광고 수입 333억 원 중 삼성전자,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 등 주요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한 수입이 281억 원으로 전체 광고 수입의 약 84.3퍼센트 수준이다. 하지만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광고 전문 기업 제일기획으로 바뀐 2016년, 신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시대를 개막하면서 자생력 있는 마케팅을 주창하며 마케팅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 점은 장기적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광고 수입원이 증가해 더 많은 수입을 기록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모기업의 재정적인 지원 없이 타이틀 스폰서를 포함한 모든 광고구좌에 타 기업을 유치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도 166억 원의 광고수입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부터 국내 최초의 돔 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을 사용하면서 광고와 기업 스폰서십 같은 수입원 증가를 통해 자생력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 야구 내 광고 구좌는 주로 홈구장 광고(전광판, 외야 펜스, 내야 펜스, 롤링보드, 파울라인, 덕아웃, 지정석과 통천 광고 등)와 유니폼 광고(헬멧과 모자 측면, 유니폼 상의 가슴 부위, 상의 백넘버 상단, 상의 양 어깨, 하의 측면, 배팅 장갑, 포수 프로텍터 등)로 구분되며 모기업 광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각 구단의 유니폼, 헬멧 등 주요 구좌는 모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계열사의 지원 대가긴 해도 선수들의 유니폼과 헬멧 등은 때로 주력 제품 또는 전략 사업을 홍보하는 공간이기도 한다.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은 모기업과 계열사 간 광고 거래를 통해 발생한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구단이 모기업에서 광고비용 형태로 지원을 받으며 아직까지 프로구단 운영에 재정적 구조의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자생적 운영’이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단이 광고비용으로 지출하는 것 이상의 광고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구단이 모기업에서 광고비용 형태로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과연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부정적인 일만 발생할까? 물론 10개 구단 모두가 모기업의 지원 없이 타이틀 스폰서십이나 광고 판매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처럼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와 같이, 모기업의 지원 없이 166억 원을 스폰서십과 광고 수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구단이 증가할 잠재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시즌 중에 노출되는 모기업의 로고 시장 가치가 모기업에서 지불하는 광고비용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닌다는 한 프로 야구 구단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최근 자생력 있는 마케팅을 표방한 구단이 증가하면서 외부 광고 유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에 두산중공업이나 두산인프라코어가 차지하던 두산 베어스 유니폼 광고 구좌에 2016년 새로이 한국타이어, 룩옵티컬 등 타사 광고가 들어섰고, NC 다이노스는 포수 프로텍터와 덕아웃 등에 참프레 광고가 삽입되었다. 모기업이나 계열사가 없는 넥센 히어로즈는 다양한 광고 구좌에 타이틀 스폰서 넥센 타이어를 비롯해 나이키, 비비큐, 화성시, 메트라이프, 파파 존스, 미래엔, 리한 등을 투입하고 있다. SK 와이번스도 2016년에 처음으로 도입한 초대형 전광판 ‘빅보드’의 측면부를 이용해 광고 구좌 5개를 추가 개설한 바 있는데, 모기업과 계열사 광고는 SK텔레콤이 유일하다. 대신 삼성전자(삼성 노트북 시리즈 9), 미래에셋생명,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PAYCO 등 타사 브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 광고 시장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로 축구는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형태도 있지만, 시민구단의 형태로 운영되는 구단도 있기 때문에 자생력이 더욱 요구된다. 프로야구에 비해 크지 않은 규모지만, 리그가 발전하면 가파른 성장 폭을 보일 수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성남 FC는 2016년 현재 K리그 클래식을 대표하는 시민구단으로, 최대 90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SK에너지 92억 원, SK하이닉스 50억원 등 총 142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이는 전체 광고 수입의 94퍼센트에 해당하므로 시민구단의 사례에 비해 모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 시장의 외형적 성장과 발전 1편” 에 대한 한 가지 생각